감정과 책임 사이에서

Please stay on the path

 

회의실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어깨가 무겁게 가라앉는 걸 느꼈다. 창밖으로 보이는 오후의 햇살은 여전히 따스했지만, 방금 전 회의실의 공기는 무겁게 정체되어 있었다. 메신저 창에는 계속해서 같은 논리, 같은 반박이 올라왔다. 회의는 끝났지만, 대화는 끝나지 않았다.

매니저라는 직함을 달았을 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는가. 권한을 주면 책임이 따라온다고 배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권한을 받은 사람이 책임은 회피하고, 감정으로 방어막을 치는 순간을 나는 목격했다. “이 데이터를 보면 우리 전략이 맞습니다.” 고객 중심이 아닌, 개인의 취향으로 굴러가는 일. 문제를 제기하면 돌아오는 건 해명이 아니라 반박이었다. 다른 시장 상황, 외부 요인, 어쩔 수 없는 변수들. 그 모든 이유 뒤에는 한 가지 문장이 숨어 있었다. 내 잘못이 아니다.

회의가 끝나고 한참 뒤,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지금 제기된 문제,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요?” 이 질문은 단순한 업무 문의가 아니었다. 자신을 리드해야 할 직속 선배가 감정적으로 대립하고 있으니, 그 사이에 낀 팀원이 조심스럽게 던진 구명 신호였다. 나는 답했다. “우리 전략에서 누락된 게 있으면, 늦었어도 실행하면 됩니다. 언제까지 어떻게 보완할지만 알려주세요.” 단순한 답이었다. 하지만 그 답을 듣고 실행할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이 답의 무게는 완전히 달라진다.

권한을 주기 전, 그는 시키는 대로 하는 직원이었다. 말을 잘 듣고, 지시를 따르고, 불평 없이 일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 더 큰 역할을 주기로 했다. 매니저. 팀을 이끌고, 전략을 세우고, 성과를 책임지는 자리. 하지만 역할이 바뀌자, 그는 달라졌다. 아니, 어쩌면 원래 모습이 드러난 것일지도 모른다. 권한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단지, 그 사람의 본질을 더 선명하게 보여줄 뿐이다.

시키는 대로 하는 직원이었던 그는, 권한을 받자 내 멋대로 하는 매니저가 되었다. 책임은 항상 외부로 돌렸다. 시장 상황, 사회적 문제, 어쩔 수 없는 변수들. 그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결론은 하나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렇다면 떨어지는 실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고객사에게 이제 투자를 중단하라고 말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 일을 그만둬야 하는가.

일을 잘하는 사람은 객관적이고 유연하다. 그들은 문제를 마주했을 때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사실을 직시하고, 누락된 것을 찾아내고, 늦었어도 실행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감정을 방패처럼 든다. 고집을 고수하고, 반박을 반복하고, 메시지로 같은 주장을 이어간다. 회의가 끝나도 대화는 끝나지 않는다. 왜일까. 어쩌면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책임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무능이 드러날까 봐. 실수를 인정하는 순간, 자리를 잃을까 봐. 그래서 더 크게 말하고, 더 강하게 반박하고, 더 많은 데이터를 들이대는 것일지도. 하지만 그 감정의 벽은, 결국 자신을 고립시킨다.

나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감정적으로 나오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책임을 회피하는 매니저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고집과 객관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어쩌면 답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특히 스스로 바뀌려는 의지가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것. 감정이 아닌 사실로 이야기하는 것. 책임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것. 그리고 기다리는 것. 변화는 강요할 수 없으니까.

창밖의 햇살은 여전히 따스하다. 하지만 내 어깨는 여전히 무겁다. 메신저 창에는 아직도 메시지가 올라오고 있을 것이다. 같은 논리, 같은 반박. 나는 다시 답한다. 단순하고 명확하게. “누락된 것을 언제까지 어떻게 보완할지 알려주세요.” 감정은 들리지 않는 척한다. 사실만을 묻는다. 책임의 경계를 지킨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다. 하지만 감정적인 사람을 대하는 법도, 결국 배워야 하는 일의 일부가 아닐까. 답답함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 답답함을 견디는 것도, 어쩌면 매니저라는 자리의 무게인지도 모른다.
어깨는 무겁지만, 발걸음은 여전히 앞으로 향한다. 답을 찾지 못했어도, 질문은 계속된다.​​​​​​​​​​​​​​​​